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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론

12. 인플레이션의 사회적 비용(1)

by 주선비 2022.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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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이 초래하는 사회적 비용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에 앞서, 우선 예상된 인플레이션과 예상치 못한 인플레이션의 차이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면 명목가치가 고정된 소득 혹은 자산을 가진 사람이 손해를 보게 된다. 예를 들어 은행에 예금해둔 돈은 인플레이션과 더불어 그 실질 가치가 수동적으로 줄어들어 손해를 입게 된다. 남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그 실질 가치가 줄어들어 해를 입는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의 발생을 먼저 예상할 수 있는 경우에는 그와 같은 결과에 대해 대비를 할 수 있고, 따라서 예상치 못한 인플레이션의 경우와는 다른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서 발생하는 인플레이션이 이들 중 어느 쪽의 성격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회적 비용이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


(1) 예상된 인플레이션의 경우


조금 비현실적이기는 하지만 분석의 편의를 위해 완벽하게 예상된 상태에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난 경우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다음에 설명할 피셔 가설에 따르면, 이처럼 완벽하게 예상된 인플레이션의 경우에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지극히 미미하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 경제는 피셔 가설이 상정하는 바와 매우 다르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은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 것이 보통이다.


① 피셔 가설



완벽하게 예상된 인플레이션의 경우, 앞으로 물가가 오를 것을 예상하는 근로자들은 실질임금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임금 인상을 요구하게 된다. 그런데 기업이 (명목)임금을 올려준다 해도 상품의 가격을 똑같은 비율로 올려 받을 수 있다면 (실질)이윤에는 아무런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따라서 기업은 이와 같은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여 임금을 올려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확실하게 예상할 수 있는 인플레이션은 기업이나 근로자 어느 사람에게도 별다른 비용을 초래하지 않는다.


완벽하게 예상된 인플레이션의 경우에는 돈을 빌려주고 받을 때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즉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실질이자율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더 높은 (명목)이자율을 요구하고, 빌리는 사람은 이에 순순히 응할 것이다. 이 때문에 명목이자율은 실질이자율에 예상된 물가상승률을 더한 값과 같아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피셔는 이와 같은 관계를 다음과 같은 피셔 가설로 정식화했다.



* 피셔 가설 : 명목이자율은 실질이자율에 예상된 물가상승률을 더한 것과 같다.



피셔 가설이 성립한다는 것은 예상된 인플레이션이 대차 계약에 미리 반영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인플레이션 때문에 손해를 보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경제의 모든 부분에서 예상된 인플레이션에 대한 조정이 행해진다면, 인플레이션은 경제에 아무런 실질적 변화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따라서 예상된 인플레이션의 사회적 비용은 별로 많이 들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② 피셔 가설의 한계



그렇지만 완벽하게 예상된 인플레이션의 경우라 하더라도 이로부터 어떤 형태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그와 같은 사회적 비용의 예로 메뉴비용과 구두창비용 그리고 계산단위비용을 들 수 있다. 예상할 수 있는지와 관계없이 인플레이션은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비용을 유발하는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메뉴비용이란 가격을 변경하는 것과 관련되어 발생하는 모든 비용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이다. 기업이 가격을 변경하는 데는 여러 가지 형태의 비용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우선 가격을 어느 정도로 조정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가격이 인쇄된 상품 포장이나 카탈로그를 새것으로 바꾸는 데 비용이 들기도 하고, 새 가격을 고객들에게 알리는데도 비용이 든다. 심지어는 가격 변경에 불만을 품은 단골손님이 거래를 중단할 위험까지 감수해야 한다. 완벽하게 예상된 인플레이션의 경우에도 이런 메뉴비용은 불가피하게 발생하기 마련이다.


구두창비용은 인플레이션이 예상될 때 사람들이 금융자산이나 실물자산을 현금화하기 위해 더욱 잦은 발걸음을 하게 되는 데서 나오는 거래비용을 뜻한다. 물가가 띌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은 되도록 현금 보유를 줄이고 금융자산이나 실물자산으로 바꿔 보유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경우 주머니 속의 현금은 실질 가치가 줄어들지만, 이런 자산들은 실질 가치가 상대적으로 더 잘 유지되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이런 자산을 한꺼번에 현금화하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현금화하는 방식을 선택하게 된다. 필요 없이 현금을 많이 갖고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금화를 위해 이곳저곳을 더욱 자주 찾아가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시간이라든가 교통비 같은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이곳저곳을 자주 찾아다니면 구두창이 빨리 닳는다는데 비유해 이를 구두창비용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계산단위비용이란 것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화폐가 계산단위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는 것과 관련을 갖는다.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모든 상품의 가격이 화폐의 단위로 표시되어 있다. 예를 들어 쌀 1kg의 가격이 3천원이고 옷 한 벌의 가격은 5만원이라는 식으로 화폐가 기본적인 계산단위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 3천원과 5만원이라는 가격이 전달하는 의미가 계속 달라진다. 이렇게 계산단위인 화폐의 실질 가치가 계속 변화함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것은 의사결정에 혼란을 가져와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원인이 된다. 바로 이를 가리켜 계산단위비용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비용들이 실제에서 얼마나 큰 규모로 발생하는지를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단지 금융기관에 자주 가야 하는 불편함이나, 메뉴를 바꾸기 위해 들여야 하는 비용, 흑은 계산단위로서의 화폐가 갖는 불확실성 때문에 인플레이션을 그토록 싫어하고 두려워한다고 생각하기에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구두창비용, 메뉴비용, 계산단위비용 같은 것은 오히려 예상된 인플레이션의 사회적 비용이 별로 많이 들지 않다는 증거가 될지 모른다. 그러나 한 달 동안의 물가상승률이 50%를 넘는 초인플레이션의 경우에는 이런 비용이 매우 큰 규모로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부정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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