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은 다른 조건이 같을 때 좀 더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 대상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다른 모든 조건이 똑같은데 기대수익률만 더 높은 투자 대상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효율 시장가설이라고 불리는 이론에 따르면, 금융자산의 가격과 기대수익률은 이에 관해 이미 공개된 모든 정보를 반영해 신축적으로 조정된다고 한다. 따라서 추가적인 위험을 부담하거나 유동성을 희생하지 않는 한 더 높은 기대수익률을 바랄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조건이 똑같으면서 기대수익률이 더 높은 자산이 있다면 그 정보가 유포되면서 이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게 된다. 모든 투자자가 그 자산을 사려 들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렇게 수요가 증가하면 그 자산의 가격은 치솟아 오르고, 이에 따라 기대수익률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앞에서 실명한 바 있지만, 자산의 가격이 오르면 그것의 기대수익률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와 같은 조정과정을 거쳐 결국 그 자산의 기대수익률은 다른 자산의 평균적인 기대수익률 수준으로 떨어지게 된다.
효율 시장가설은 특히 주식 가격의 동향과 관련해 많이 논의되고 있다. 만약 주식 가격이 이미 공개된 모든 정보를 반영하고 있다면, 이것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된다. 한 투자자가 시중에 유포된 정보를 분석한 결과, 어떤 주식의 가격이 틀림없이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고 하자. 그렇다면 다른 모든 투자자들도 비슷한 예상을 하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그 주식에 대한 수요가 커져 가격이 즉각 올라가게 된다. 일단 그렇게 된 후에는 앞으로 주식 가격이 어떻게 변화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처럼 주식 가격이 모든 정보를 반영해 신축적으로 조정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앞날의 동향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효율 시장가설은 주식 가격의 동향을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예측 불능가설로 이어지게 된다. 이 가설의 영어 이름에서 보는 'random walk'라는 표현은 주식 가격의 동향이 마치 술 취한 사람의 발걸음과 비슷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주식 가격의 앞날을 점치는 것은 술 취한 사람이 어느 위치에 다음 발걸음을 떼어놓을지 예측하는 것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만약 효율 시장가설이 맞는다면 주식투자에서 남들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다음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위험한 주식에 남보다 더 많이 투자하고 운이 좋아 높은 수익률을 얻는 경우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내부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경우다. 내부정보란 주식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데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은 은밀한 정보를 말한다. 내부정보를 가진 사람이 더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를 이용한 주식 거래는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주식시장이 발달한 선진국에서는 효율 시장가설의 현실설명력이 상당히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효율 시장이론으로 잘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 종종 일어나기는 한다. 그 좋은 예가 미국 주식시장에서 1987년 10월 19일에 일어난 소위 '검은 월요일(Black Monday)이란 사건이다. 이날 별다른 이유가 없는데도 거의 전 종목에 걸친 급격한 주가 하락이 일어났다. 효율 시장가설은 어떤 이유로 단 하루 만에 평균 22%에 이르는 엄청난 주가 폭락이 발생했는지 제대로 설명해 주지 못하고 있다.
가끔 일어나는 이런 주가 폭락 사태를 예로 들어 주식시장이 거품과 비합리적 투기행위 등으로 가득 찬 도박판과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그러나 수많은 실증분석의 결과, 몇몇 예외적인 기간을 제외하면 효율 시장가설이 대체로 현실과 크게 동떨어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최소한 선진국의 주식시장만을 놓고 볼 때, 앞날의 주식 가격을 예측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는 것이 거의 정설로 되어 있다. 주식시장이 아직 발전단계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효율 시장가설이 어느 정도의 설명력을 갖는지를 많은 이견이 있다.
# 철학자도 큰돈을 벌 수 있다?
세상의 이치가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늘 사색에 잠겨 있는 철학자가 큰돈을 번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정치학』에 등장하는 밀레투스의 철학자 탈레스의 예를 보면 철학자도 마음만 먹는다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올리브기름을 찌는 기계의 독점적 사용권을 확보해 큰돈을 번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문과 기상에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던 탈레스는 어느 한 해 올리브 농사가 대풍을 이룰 것을 예상했다. 올리브 압착기에 대한 수요도 커질 것으로 예상한 그는 압착기 소유자를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수확 철에 그 기계를 시용할 권리를 자신에게 팔라고 요청했다. 그는 모든 압착기 소유자와 일정한 사용료를 내는 조건으로 수확 철에 그 기계를 사용할 권리를 갖는다는 조건의 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이 계약으로 인해 올리브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기름을 짜려면 탈레스를 찾아 압착기를 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 계약은 우리가 지금의 선물과 옵션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었다. 미래의 일정 시점에서 미리 합의된 사용료를 내고 압착기를 사용할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이것이 선물계약의 성격을 갖는다는 뜻이다. 탈레스와 압착기 소유자 사이에 맺어진 계약은 오늘날 선물계약과 기본적으로 똑같은 성격을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막상 수확 철이 되었는데 올리브 농사가 대흉작이어서 압착기를 쓸 일이 없게 되었다고 하자. 그런 상황에서도 탈레스가 압착기를 꼭 써야 하는 것은 아니고 계약을 맺을 때 지불한 돈만 포기하면 된다. 그는 이 계약을 맺으면서 계약금으로 아라본이라는 것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압착기를 쓰지 않게 되면 이 아라본만 포기하면 된다. 이 점에서 볼 때 그 계약은 옵션계약의 성격을 갖는다고 볼 수 있으며, 그가 지불한 아라본은 옵션프리미엄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 해의 올리브 농사는 탈레스가 예상한 대로 대풍을 이루었다. 이에 따라 올리브 압착기에 대한 수요가 엄청나게 커졌는데, 그것을 빌리려면 모두가 탈레스를 찾아가야만 했다. 압착기에 대해 독점력을 갖고 있던 그는 이 상황에서 당연히 높은 사용료를 받았고, 이를 통해 큰돈을 벌게 되었다. 천문과 기상의 지식이 큰돈을 버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철학자는 말만 그럴듯하게 할 뿐 실생활에서는 무능하기 짝이 없다는 일반 대중의 편견을 비웃어 주고 싶은 동기에서 이런 일을 벌였을 것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 에피소드가 특히 흥미로운 이유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시장을 독점함으로써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음을 보인 첫 번째 사례라는 점이다. 탈레스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독점자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가 오늘날 우리가 보는 선물, 옵션 같은 파생상품의 첫 번째 거래자였다는 사실이다. 파생상품은 가장 새로이 등장한 상품 중 하나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파생 상품이 거래되기 시작한 역사는 2천 년이 훨씬 넘는 셈이다.
쉴러는 탈레스가 최초의 파생상품 거래자였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역사적 기록에 파생상품이 처음 등장한 것은 이보다 훨씬 더 앞선 시점이다. 바빌로니아 제1 왕조의 제6대 왕이었던 함무라비 왕이 파생상품 거래를 규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기록을 보면 지금으로부터 거의 4천 년 전에 이미 파생상품이 거래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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