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화폐의 정의
화폐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이 자연스럽게 돈을 연상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 일상생활에서 돈이라는 말은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는 돈을 많이 번다."라는 표현에서의 돈은 소득을 뜻한다. "돈 많은 투자자를 잡으려 한다."는 경우의 돈은 실제로 재산이나 부를 뜻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학에서 화폐라는 용어는 소득이나 재산까지 포괄하는 광범한 의미가 아니라, 교환의 매개물 또는 거래의 지불수단이라는 좁은 의미로 시용되고 있다.
교환의 매개물이나 거래의 지불수단이라고 할 때 우선 만 원짜리 지폐나 500원짜리 주화 같은 것들, 즉 정부가 발행한 화폐를 머릿속에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오늘날의 경제에서 지폐나 주화를 매개로 하는 거래보다는 수표나 어음 등을 이용한 거래의 비중이 훨씬 더 큰 것을 볼 수 있다. 요즘에는 신용카드를 이용해 마음대로 물건을 사고팔 수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전자화폐라는 것까지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화폐의 범주 안에는 우리가 보통 화폐라고 생각하는 것뿐 아니라 수표, 어음, 신용카드처럼 교환의 매개물이나 거래의 지불수단이 될 수 있는 것 모두가 포함될 수 있다. 경제학이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이래, "화폐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은 많은 논의의 대상이 되어 왔다. 경제학자들은 편의상 화폐가 담당해야 할 기능을 먼저 정의하고, 그 기능을 수행하는 것을 화폐라고 정의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선 경제학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화폐의 기능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2) 화폐의 세 가지 기능
① 교환 매개의 기능
교환 매개의 기능이란, 거래 과정에서 화폐가 일반적인 지불수단으로 사용된다는 것을 뜻한다. 교환 매개 기능의 중요성은 화폐가 존재하지 않는 물물교환 경제를 상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이 옥수수를 생산하는 김 씨는 사과가 있어야 하는데, 사과를 생산하는 이 씨는 옥수수가 있어야 한다고 하자. 만약 김씨와 이 씨가 운 좋게 서로 만날 수 있다면 옥수수와 사과를 교환함으로써 각자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와 같은 '욕망의 상호일치'를 기대하기는 무척 힘들다. 서로 원하는 물건을 가진 사람을 찾으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만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화폐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모는 경제주체가 그것을 교환의 매개물로 인정해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물건과 기꺼이 교환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화폐가 존재하면 적합한 거래 상대방을 찾기 위해 아까운 시간과 노력을 써야 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제는 그 시간과 노력을 상품 생산에 투입할 수 있게 되므로 경제의 생산성이 현저하게 향상될 수 있다.
② 가치척도의 기능
가치척도의 기능은 각 상품의 가치가 화폐의 단위로 측정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만약 화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떤 특정한 상품을 기준으로 가치를 나타내야 한다. 예를 들어 토끼가 가치척도의 기준이 된다면, 운동화의 가치는 토끼 세 마리, 휴대폰의 가치는 토끼 스무 마리 등으로 표현해야 한다. 또한 어떤 사람은 토끼를 가치척도의 기준으로 삼는데 다른 사람은 배추를 가치 척도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매우 큰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 이렇게 화폐가 아닌 상품으로 가치를 나타내는 방식에 여러 가지 불편이 따를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③ 가치저장의 기능
어떤 농민이 가을에 거둔 과일을 저장해 두었다가 다음 해 봄에 팔아 자녀들의 등록금을 마련하려 한다고 하자. 그렇게 하는 것보다는 과일을 그해 가을에 팔아 버리고, 그 돈을 금고에 보관해 두었다 쓰는 것이 더욱 편리하다. 화폐는 한 시점에서 다른 시점까지 구매력을 보관해 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를 가리켜 가치저장의 기능이라고 부른다. 과일을 저장해 두는 것은 성가신 일이고 비용도 들지만, 돈으로 보관해 두는 경우에는 조그만 금고 하나만 있으면 된다. 이를 보면 화폐가 가치저장의 수단으로 얼마나 우월한지 잘 알 수 있다.
# 얍섬의 돈 이야기
캐나다의 태평양 연안에 사는 인디언 부족들은 최근까지도 조개껍데기를 돈으로 사용했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어렸을 때 본 만화에 나오는 것처럼 돌을 깎은 것을 돈으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석기시대도 아닌 현대에 사는 사람들이 돌을 깎아 돈을 만들어 썼다는 이야기를 선뜻 믿으려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꾸며낸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마이크로네시아연방의 일원인 남태평양의 얍에 사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최근까지도 석회석을 둥그런 모양으로 깎은 것을 화폐로 사용해 왔다.
여러 개의 돌 중 큰 돌일수록 더 큰 액면을 의미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 섬은 미국의 보호령이었기 때문에 일상적인 물건을 사고파는 데 달러가 통용되고 있으나, 큰돈이 오가는 재산의 거래에는 돌돈을 사용하는 경우가 더 흔하다고 한다. 얼마 전에 어떤 미국인은 지름이 80센티미터 정도 되는 돌돈을 지불하고 자그마한 빌딩을 하나 구입했다고 한다.
우리가 가장 호기심을 가진 부분은 그 무거운 돌돈을 어떻게 주고 받았을까라는 점이다. 아주 큰 돌의 경우에는 말로만 주고받는 것으로 거래를 끝낸다고 한다. 예컨대 교회 앞마당에 놓여 있는 지름 1미터의 돌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이웃으로부터 집과 카누를 산 대가로 그 돌을 주기로 했다면 이제부터 그 돌이 너의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모든 거래가 끝난다. 그 말 한마디로 이제 그 돌은 새 주인의 소유가 된 것이다. 언젠가 그 섬을 방문한 외지인은 우리로 치면 재벌에 해당하는 큰 부자의 소문을 듣게 되었다. 실제로 그의 돈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데, 이상하게 어느 누구도 그가 큰 부자라는 데 의심을 갖지 않고 있었다. 이 사실에 흥미를 느껴 그 연유를 수소문해 물은 결과 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그의 먼 할아버지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비로소 그가 부자가 된 이유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그의 할아버지가 그 옛날에 한 일 때문에 오늘날 그가 부자로서 행세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어느 날 그의 할아버지는 동네 사람들과 함께 그 섬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한 무인도로 돌돈을 만드는 여행을 떠났다. 아무 돌이나 둥글게만 깎으면 모두 돈이 되는 것이 아니고 바로 그 섬에서 나는 석회석만이 돈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엄청나게 큰 돌을 다듬어 모두가 부러워하는 큰돈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너무 큰 탓에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카누가 뒤집어져 물속에 빠지고 말았다. 비록 그 돌이 물속으로 가라앉았지만 함께 간 사람들이 그 돌이 얼마나 컸던지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큰 돌은 어차피 한 곳에 놓아두고 말로만 주고받는 것이기 때문에 그 돌이 바다 밑에 누워 있다고 한들 아무 문제가 없다는 데 모두 의견을 같이했다.
이것이 바로 그가 큰 부자가 된 연유이며. 그로부터 상속받은 후손들도 대대로 부자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그 돌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얍섬 번화가의 빌딩 하나를 사고 바다 밑의 그 돌돈은 네 것이라고 말하면 새 주인이 그것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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