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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론

2. 이론의 검증

by 주선비 2022.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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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론은 그것이 정말로 현실과 부합하는지를 확인하는 검증과정을 거쳐야 한다. 앞에서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설명한 것처럼 이론적 부분의 결과는 명제 혹은 가설의 형태로 구체화하여 제시된다. 우리는 현실 경제에서 수집한 통계자료에 따라 어떤 가설이 타당한지의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그런데 이 검증과정에서 자칫하면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즉 어떤 가설이 실제로는 맞는데 틀렸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고, 그 반대로 실제로는 틀린 데 맞는다고 결론을 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통계학에서는 이런 잘못된 평가를 제1형과 제2형의 오판으로 구분하고 있다. 즉 어떤 가설이 실제로는 맞는데 틀린다고 평가하는 것을 제1형의 오판, 그리고 실제로는 틀린 데 맞는다고 평가하는 것을 제2형의 오판이라고 부른다.

어떤 가설을 검증해 본 결과 그것이 맞는다고 믿을 근거가 있기는 한데 틀릴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고 하자. 그런데도 그 가설이 맞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면 그것은 매우 위험스러운 일이다. 그런 경우라면 어느 한쪽으로 확정적인 판단들 내리지 않는 편이 안전할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이론이 맞는다거나 혹은 틀린다고 판단을 내리는 것은 오판의 여지가 상당히 적을 경우에 한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까지 오판의 가능성이 있을 때 확정적인 판단을 내려도 좋을까? 문제의 성격상 어떤 절대적인 기준을 설정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약간 자의적이기는 하지만, 1%나 5% 등 허용할 수 있는 오판의 범위를 사전적으로 정해 놓는 것이 보통이다. 예를 들어 어떤 가설이 맞는 것이라는 판단을 내릴 근거가 상당히 뚜렷하기는 하지만 그 판단이 틀릴 가능성이 3.5% 정도 된다고 하자. 만약 사전에 오판의 허용범위를 5%로 잡아 놓았다면 이 경우 그 가설이 맞는 것이라고 판단을 내려도 좋은 것이다.

이론을 검증하는 일과 관련해서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것은 어떤 가설이 맞는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입증할 수 있겠느냐는 물임이다. 포퍼라는 과학철학자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어떤 가설이 맞는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입증할 수는 없으며, 단지 그것이 틀렸다는 방증만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모든 백조는 흰색 깃털을 갖고 있다.'라는 명제를 제시했다고 하자. 이 세상의 모든 백조를 직접 관찰하지 않는 한 이 명제가 참이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입증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한 마리의 검은 백조를 관찰할 수 있으면 이 명제가 참이 아니라는 방증이 가능하게 된다.

이와 같은 포퍼의 주장에는 분명한 논리적 근거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반증만을 받아들이고 일체의 적극적인 입증을 거부할 수는 없다. 사실 이와 같은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연구방법론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과학철학에서도 확실한 결론이 나지 않은 문제다. 다만, 검증의 문제가 그리 단순한 성질의 것이 아니며, 우리가 일반적으로 수행하는 검증의 결과에 확신을 가질 수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양치는 소년과 늑대

양치는 소년이라는 이솝우화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늑대가 나타났다는 말은 참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 만약 소년이 늑대가 나타났다고 말을 한 상황에서, 실제로 늑대가 나타났는데 이를 사람들이 믿지 않았다면 제1형의 오판을, 반면에 실제로는 늑대가 나타나지 않았는데 소년의 말을 정말이라고 사람들이 믿었다면 제2형의 오판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중 훨씬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제1형의 오판이다. 제2형의 오판을 하는 경우, 사람들은 쓸데없이 소리 나는 곳으로 뛰쳐나가는 수고를 하게 된다. 그러나 제1형의 오판은 그 소년을 죽음으로까지 몰아넣을 수 있기 때문에 한층 더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처음에 그 소년을 돕기 위해 맹렬한 기세로 뛰어나간 것은 이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늑대가 나타났다는 말이 명백한 거짓이라는 확신이 없는 한 사람들은 그 소년을 도우러 나서게 된다. 그렇지만 거짓말이 거듭되면서 사람들은 그 소년의 말이면 무조건 거짓이라고 믿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늑대가 나타났다는 말이 진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를 믿지 않아 제1형의 오판을 저지르기에 이르렀다. 그 소년의 어리석음이 끝내는 자신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죄인을 심판하는 사법제도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판사나 배심원들도 신이 아닌 이상, 무고한 사람을 유죄로 판결하고 죄를 저지른 사람을 무죄로 판결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게 된다. 검찰이 정황 증거만을 가지고 사실은 죄가 없는 어떤 사람을 기소했다고 하자. 만약 그가 유죄 판결받는다면 아무 죄가 없는 사람이 억울하게 처벌받는 결과가 빚어질 수 있는데, 이때 제1형의 오판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 무죄 판결받았다고 하자. 그렇게 되면 실제로 범죄를 저지르고도 무죄 판결받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데, 이것은 제2형의 오판에 해당한다.

이 두 가지 오판 중에서 어느 쪽이 더욱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원하는 사법제도의 성격이 달라진다. 범죄를 저지르고서도 무죄 판결을 받는 사람이 생기는 것은 어찌할 수 없어도, 범죄와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검찰 측의 증명책임이 매우 무겁게 되어 있는 사법제도를 지지하게 된다. '범죄를 저질렀다고 입증되기 전에는 무죄'라는 그 유명한 법률의 격언은 바로 이와 같은 생각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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